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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요
회화작가

 일상에서 삶의 규칙과 매뉴얼을 지켜나가다보면
그 모든 요소들이 작업을 할 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허요
 회화작가 
 
차가 겨우 교행하는 좁은 도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이 속속 밥집을 찾아가는 풍경, 다닥다닥 붙은 식당과 주택이 즐비한 양재동 어느 골목에 자리한 허요 작가의 작업실. 그녀가 대화 속에서 언급한 ‘그리드의 풍경’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녀의 작업실은 회화 작가의 작업실이라고 하기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모든 사물들이 제 자리를 아는 공간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 커피가 담긴 큼지막한 텀블러를 들고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고서야 작업실 한 켠 자유롭고 독특한 그녀의 관심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미지의 영역,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치열하게 통제한다고 말한다.
Q1: 작업의 단정함이나 치열함에 비해 털털한 모습이다. 평소 본인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방식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지.
A1: 평소에 낮가림은 없는 편이다. 많이 웃고, 사람을 좋아한다. 단정짓는 말투를 너무 싫어해서 그런 말투를 가진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보통 어떤 상황이 오면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아. 좀 생각해 봐야겠어.” 라고 답한 뒤 결정은 빨리 하는 편이다.
Q2: 개념이나 인상이 물성, 행위와 만나 표현되는 은은한 말하기 방식이 흥미롭다.
A2: 성격은 사회화가 된 것일 수 있다. 어렸을 땐 내성적이고 쉽게 울고 짜증도 많은 편이었다. 크면서 많이 바뀌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나의 모습이 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작업에 몰입하면 본능적인 자아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Q3: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A3: 나는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미술과 체육을 좋아하는 이과생 이었고, 어린 시절에는 내가 과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능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지금 선택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이 많이 바뀔 거라고 직감했다. 늦은 선택이었기에 재수를 하면서 미술을 시작했다. 당시엔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고, 대학에 다니면서 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
일상에서 삶의 규칙과 매뉴얼을 지켜나가다보면 그 모든 요소들이 작업을 할 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작업은 인간의 미지의 영역이 드러나는 것이니까.
Q4: 이제까지의 삶과 작업에 영감을 준 인물이 있다면
A4: 이우환 작가. 불규칙한 삶은 사는 작가들도 많은데 일과를 치열하게 지키는 점이 많은 영감이 되었다. 일상에서 삶의 규칙과 매뉴얼을 지켜나가다보면 그 모든 요소들이 작업을 할 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작업은 인간의 미지의 영역이 드러나는 것이니까.
Q5: 하루의 루틴을 알려달라.
A5: 먼저, 10 to 5를 지킨다. 이것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길을 왔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작업실에 나오면 커피 한 샷을 내려 텀블러에 담아 하루 종일 마신다. 또 작업할 때는 명상 음악만 듣는다. 무거운 것을 잘 들기 위해, 또 몸의 중심이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런 식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작업을 위해서 세팅하고 있다. 나는 늘 미지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작업하는 순간마다 미지의 나, 내가 몰랐던 나를 확인하는 느낌이다.
매체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즉흥적이고, 때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정확한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판단 없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듯 작업한다.
Q6: 조소를 전공하고, 현재는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체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데, 매체의 확장과 표현에 관한 그간의 생각들에 대해 듣고 싶다.
A6: 평면을 시작한지는 3년차에 접어들었다. 내가 입체 작업을 할 때마다 늘 페인팅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호기심에 평면을 파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물성과 입체를 다루던 사람이라 그런지 캔버스가 나에겐 나무와 천의 조화로 와 닿았다. 확장의 방법에 있어서는 정해진 것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작업했고 작업과정에서 ‘둘이 완벽히 다른 언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나로 표현되는 것이 다른 것으로 표현이 안된다는 설명이 정확할 것 같다. 페인팅은 즉각적인 순간이 많다 보니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나'와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느끼고, 입체는 물성과 중력을 다루며 여러 단계의 생각을 거쳐야 하는 점에서 좀 더 개념을 명확히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작지만 힘이 있는 작업에 적합하다. 매체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즉흥적이고, 때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정확한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판단 없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듯 작업한다.
Q7: 작업에 지속적으로 그리드가 등장한다. 프레임과 규칙,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7: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파트에 둘러싸여 자랐다. 인간은 원래 가지고 태어난 환경인 자연 속에서 살지만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나에겐 그리드가 풍경이자 환경이다. 그래서 그리드를 그리는 것은 풍경화이기도 하다. 늘 답답함과 풍경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유학을 끝내고 그리스에서 한 달 시간을 보냈는데, 돌아오니 서울이 너무 답답하고 사람 사는 공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시멘트 건물과 과일 가게의 진열대, 상자, 창살… 그리드가 아닌 것이 없었고 이것이 옳은 환경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을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에 오프 그리드 off gird 라는 단어가 있는데, 도시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살아보는 행위를 지칭한다. 지금의 그리드를 벗어나 다른 장소에 갈 수도 있지만 어디에든 그 문화의 그리드가 존재한다.
Should I Cut Your Grid?, 2019, acrylic and oil on mixed cotton and linen, 130.3x130.3cm 
Loose Bars, 2019, oil and wax on cotton, 60x60x1.9cm without concrete cornerstone 
Q8: 'Vacation Ended' 작업의 시작과 발전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A8: 그리스에서 돌아와서 “휴가는 끝났다.” 라는 문장이 맴돌았고 언젠가 전시제목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길 수 없는 휴가'는 회사원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짜여진 삶 안에서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날짜가 정해진 휴가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드는 눈에 보이지만 잡을 수 없는 것이고, 시각적인 물성이다. 물성을 파괴하려면 평면에선 불가능하고 입체를 가져와야만 가능했다. 평면에 입체를 다루던 세포들이 녹아 들었고 2.5D라고 볼 수 있는 작업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 작업에서는 그리드를 환기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비치는 원단을 사용해서 공기 층을 표현했다.
Q9: 작업의 소재와 그 변화에 대해 말해달라.
A9: 원래 콘크리트, 시멘트를 많이 썼다. 가장 직설적인 재료이기도 하고 회색 몰드라는 것 자체가 무거움과 답답함 등 도시의 느낌을 품고 있다. 캔버스 원단 중 반아사천도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했다. 한국에 돌아와 적응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리드에 대한 개념이 점점 바뀌었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후 표현 방식(시각적으로 소화해내는 방식)이 바뀌었고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조금씩 석회, 소금, 밀랍 등 다른 재료들이 개입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밀랍에 안착했는데, 밀랍은 누르면 들어가고 깎이는 연약한 재료이다. 그리드가 완벽하지 않은 망가진 형태로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 자연스러운 파괴 양상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조각작업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맑고 섬세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어 나에게 이상적인 재료로 다가왔다.
Yary Yary Skeleton, 2020, pigment and beeswax on canvas, 130.3x130.3cm 
Knuckle Stenosis, 2020, plaster, 38x79.5x12.3cm 
Q10: 'Loose Joint' 작업에서 Body Part가 등장하는데, 작업에 있어 몸(물리적 주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A10: 어린 시절부터 고관절 장애가 있다. 20 대 중반부터 몸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몇 년 전부터 대체 의학에 의존해서 치료를 받고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삶을 대하는 방식도 바뀌고 유지와 지속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 구조가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것, 몸으로 할 수 있는 일과 몸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후 그리드를 몸에 빗대어 생각하게 되었다.
Q11: 작업의 어려움과 기쁨이 있다면
A11: 어려움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현대 미술은 실용성이나 상업성을 지양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작가의 작업이 팔릴 시점이 되려면 작업들이 쌓여 증명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이전에 디자인회사에 다니며 번 돈을 아껴 뒀다가 작업에 쓰고 있고, 생계는 카탈로그나 광고문구 등 디자인요소가 들어간 번역을 하며 유지한다. 좋은 작업이 나왔을 때의 기쁨이 이 삶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 같다.
Q12: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A12: 석탑에 빠졌다. 국보탑들이나 독특한 모양을 가진 탑들에 관심이 많아서 탑 지도를 만들어 전국을 다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탑은 백제가 규모나 형태 면에서 가장 발달해 있고, 독특한 형태가 많다. 그래서 충청, 전라 쪽에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잘 안 난다. 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대부분 화학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이 많은데 충청,전라 지역은 쌈장이나 쌀 등 곡물을 다루는 공장들이 많은 것도 흥미로웠다.
Q13: 작가로서의 고민이 있는지.
A13: 우리나라만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재료나 특정 표현방식을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학교에서 석고나 흙, 나무, 돌 등의 재료를 위주로 작업하다 보면 왜 현대적인 재료를 쓰지 않는지에 대해 지적을 당하거나 옛날 작업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젊은 작가들의 작업 초점이 디지털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다양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재료들도 시간이 지나면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분위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늘 고민한다. 작업은 의사소통의 방식이기에 우리가 현대에 대면, 전화, 문자, 톡, 디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 하듯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업은 원초적인 것과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부분에서 본인만의 명분과 타협점을 찾고 있다.

"인간은 원래 가지고 태어난 환경인 자연 속에서 살지만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나에겐 그리드가 풍경이자 환경이다. 그래서 그리드를 그리는 것은 풍경화이기도 하다."
Artist : Yoh Hur
Editor : Jeongin Kim
Photographer : Jeongin Kim
Director : Yeonjae Yoon
 차가 겨우 교행하는 좁은 도로, 점심시간에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이 속속 밥집을 찾아가는 풍경, 다닥다닥 붙은 식당과 주택이 즐비한 양재동 어느 골목에 자리한 허요 작가의 작업실. 그녀가 대화 속에서 언급한 ‘그리드의 풍경’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녀의 작업실은 회화 작가의 작업실이라고 하기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고 모든 사물들이 제 자리를 아는 공간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옷차림, 커피가 담긴 큼지막한 텀블러를 들고 나타나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녀를 보고서야 작업실 한 켠 자유롭고 독특한 그녀의 관심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미지의 영역, 내가 몰랐던 나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치열하게 통제한다고 말한다.   Q1: 작업의 단정함이나 치열함에 비해 털털한 모습이다. 평소 본인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방식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지.
 A1: 평소에 낮가림은 없는 편이다. 많이 웃고, 사람을 좋아한다. 단정짓는 말투를 너무 싫어해서 그런 말투를 가진 사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보통 어떤 상황이 오면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아. 좀 생각해 봐야겠어.” 라고 답한 뒤 결정은 빨리 하는 편이다.   Q2: 개념이나 인상이 물성, 행위와 만나 표현되는 은은한 말하기 방식이 흥미롭다.
 A2: 성격은 사회화가 된 것일 수 있다. 어렸을 땐 내성적이고 쉽게 울고 짜증도 많은 편이었다. 크면서 많이 바뀌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나의 모습이 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작업에 몰입하면 본능적인 자아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Q3: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A3: 나는 미술을 공부하지 않았다. 미술과 체육을 좋아하는 이과생 이었고, 어린 시절에는 내가 과학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능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가장 좋아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지금 선택하지 않는다면 나의 삶이 많이 바뀔 거라고 직감했다. 늦은 선택이었기에 재수를 하면서 미술을 시작했다. 당시엔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고, 대학에 다니면서 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   일상에서 삶의 규칙과 매뉴얼을 지켜나가다보면 그 모든 요소들이 작업을 할 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작업은 인간의 미지의 영역이 드러나는 것이니까.   Q4: 이제까지의 삶과 작업에 영감을 준 인물이 있다면
 A4: 이우환 작가. 불규칙한 삶은 사는 작가들도 많은데 일과를 치열하게 지키는 점이 많은 영감이 되었다. 일상에서 삶의 규칙과 매뉴얼을 지켜나가다보면 그 모든 요소들이 작업을 할 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작업은 인간의 미지의 영역이 드러나는 것이니까.   Q5: 하루의 루틴을 알려달라.   A5: 먼저, 10 to 5를 지킨다. 이것에 성공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길을 왔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작업실에 나오면 커피 한 샷을 내려 텀블러에 담아 하루 종일 마신다. 또 작업할 때는 명상 음악만 듣는다. 무거운 것을 잘 들기 위해, 또 몸의 중심이 비뚤어지지 않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런 식으로 일상의 모든 것을 작업을 위해서 세팅하고 있다. 나는 늘 미지의 영역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작업하는 순간마다 미지의 나, 내가 몰랐던 나를 확인하는 느낌이다.   매체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즉흥적이고, 때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정확한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판단 없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듯 작업한다.   Q6: 조소를 전공하고, 현재는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매체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데, 매체의 확장과 표현에 관한 그간의 생각들에 대해 듣고 싶다.   A6: 평면을 시작한지는 3년차에 접어들었다. 내가 입체 작업을 할 때마다 늘 페인팅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호기심에 평면을 파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물성과 입체를 다루던 사람이라 그런지 캔버스가 나에겐 나무와 천의 조화로 와 닿았다. 확장의 방법에 있어서는 정해진 것 없이 왔다 갔다 하며 작업했고 작업과정에서 ‘둘이 완벽히 다른 언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나로 표현되는 것이 다른 것으로 표현이 안된다는 설명이 정확할 것 같다. 페인팅은 즉각적인 순간이 많다 보니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나'와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느끼고, 입체는 물성과 중력을 다루며 여러 단계의 생각을 거쳐야 하는 점에서 좀 더 개념을 명확히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작지만 힘이 있는 작업에 적합하다. 매체를 넘나드는 것 자체가 즉흥적이고, 때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정확한 뉘앙스를 표현하기 위해 판단 없이 두 가지 언어를 구사하듯 작업한다.   Q7: 작업에 지속적으로 그리드가 등장한다. 프레임과 규칙, 그리고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7: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아파트에 둘러싸여 자랐다. 인간은 원래 가지고 태어난 환경인 자연 속에서 살지만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나에겐 그리드가 풍경이자 환경이다. 그래서 그리드를 그리는 것은 풍경화이기도 하다. 늘 답답함과 풍경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유학을 끝내고 그리스에서 한 달 시간을 보냈는데, 돌아오니 서울이 너무 답답하고 사람 사는 공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리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시멘트 건물과 과일 가게의 진열대, 상자, 창살… 그리드가 아닌 것이 없었고 이것이 옳은 환경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을 파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에 오프 그리드 off gird 라는 단어가 있는데, 도시 시스템에서 벗어나서 살아보는 행위를 지칭한다. 지금의 그리드를 벗어나 다른 장소에 갈 수도 있지만 어디에든 그 문화의 그리드가 존재한다.   Should I Cut Your Grid?, 2019, acrylic and oil on mixed cotton and linen, 130.3x130.3cm   Loose Bars, 2019, oil and wax on cotton, 60x60x1.9cm without concrete cornerstone   Q8: 'Vacation Ended' 작업의 시작과 발전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A8: 그리스에서 돌아와서 “휴가는 끝났다.” 라는 문장이 맴돌았고 언젠가 전시제목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길 수 없는 휴가'는 회사원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짜여진 삶 안에서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날짜가 정해진 휴가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그리드는 눈에 보이지만 잡을 수 없는 것이고, 시각적인 물성이다. 물성을 파괴하려면 평면에선 불가능하고 입체를 가져와야만 가능했다. 평면에 입체를 다루던 세포들이 녹아 들었고 2.5D라고 볼 수 있는 작업들이 나오게 되었다. 이 작업에서는 그리드를 환기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비치는 원단을 사용해서 공기 층을 표현했다.   Q9: 작업의 소재와 그 변화에 대해 말해달라.   A9: 원래 콘크리트, 시멘트를 많이 썼다. 가장 직설적인 재료이기도 하고 회색 몰드라는 것 자체가 무거움과 답답함 등 도시의 느낌을 품고 있다. 캔버스 원단 중 반아사천도 비슷한 맥락에서 사용했다. 한국에 돌아와 적응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리드에 대한 개념이 점점 바뀌었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후 표현 방식(시각적으로 소화해내는 방식)이 바뀌었고 두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부터는 조금씩 석회, 소금, 밀랍 등 다른 재료들이 개입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밀랍에 안착했는데, 밀랍은 누르면 들어가고 깎이는 연약한 재료이다. 그리드가 완벽하지 않은 망가진 형태로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 자연스러운 파괴 양상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조각작업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맑고 섬세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어 나에게 이상적인 재료로 다가왔다.   Yary Yary Skeleton, 2020, pigment and beeswax on canvas, 130.3x130.3cm   Knuckle Stenosis, 2020, plaster, 38x79.5x12.3cm   Q10: 'Loose Joint' 작업에서 Body Part가 등장하는데, 작업에 있어 몸(물리적 주체)에 관한 생각이 궁금하다.   A10: 어린 시절부터 고관절 장애가 있다. 20 대 중반부터 몸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몇 년 전부터 대체 의학에 의존해서 치료를 받고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삶을 대하는 방식도 바뀌고 유지와 지속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 구조가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것, 몸으로 할 수 있는 일과 몸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후 그리드를 몸에 빗대어 생각하게 되었다.   Q11: 작업의 어려움과 기쁨이 있다면   A11: 어려움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현대 미술은 실용성이나 상업성을 지양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작가의 작업이 팔릴 시점이 되려면 작업들이 쌓여 증명할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이전에 디자인회사에 다니며 번 돈을 아껴 뒀다가 작업에 쓰고 있고, 생계는 카탈로그나 광고문구 등 디자인요소가 들어간 번역을 하며 유지한다. 좋은 작업이 나왔을 때의 기쁨이 이 삶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 같다.   Q12: 최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A12: 석탑에 빠졌다. 국보탑들이나 독특한 모양을 가진 탑들에 관심이 많아서 탑 지도를 만들어 전국을 다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탑은 백제가 규모나 형태 면에서 가장 발달해 있고, 독특한 형태가 많다. 그래서 충청, 전라 쪽에 가보고 싶은데 시간이 잘 안 난다. 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대부분 화학 연기를 내뿜는 공장들이 많은데 충청,전라 지역은 쌈장이나 쌀 등 곡물을 다루는 공장들이 많은 것도 흥미로웠다.   Q13: 작가로서의 고민이 있는지.   A13: 우리나라만이라 할 수 있는 작업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재료나 특정 표현방식을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학교에서 석고나 흙, 나무, 돌 등의 재료를 위주로 작업하다 보면 왜 현대적인 재료를 쓰지 않는지에 대해 지적을 당하거나 옛날 작업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젊은 작가들의 작업 초점이 디지털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다양성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재료들도 시간이 지나면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분위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늘 고민한다. 작업은 의사소통의 방식이기에 우리가 현대에 대면, 전화, 문자, 톡, 디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 하듯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업은 원초적인 것과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부분에서 본인만의 명분과 타협점을 찾고 있다.   "인간은 원래 가지고 태어난 환경인 자연 속에서 살지만 우리는 사람이 만들어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나에겐 그리드가 풍경이자 환경이다. 그래서 그리드를 그리는 것은 풍경화이기도 하다." 
Artist : Yoh Hur
Editor : Jeongin Kim
Photographer : Jeongin Kim
Director : Yeonjae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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